많은 일이 있을 2월 5일 월요일. 우선 집 계약을 하러 솔하우징 부동산에 갔다. 가장 이른 시간인 아침 9시반에 방문하는 걸로 예약을 해놓았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도 혼자 집 계약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서류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고 심지어 우리나라도 아니다보니 생소한 것 투성이었지만, 내 담당 직원분이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주신 덕분에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계약서 하나하나 용도가 무엇인지 설명받고 도장찍고 하느라 한시간 정도 소모되었지만 생각보단 빨리 수월하게 잘 끝났다. 수수료가 조금 들긴 했지만 혼자서라면 몇배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할 과정이었기에 이정도면 한인 부동산을 통해서 할만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암튼 10시반 쯤 솔하우징에서 계약을 마치고 열쇠 받고 마침내 집으로 향했다.
사실 이 다음이 문제였다. 시부야역 코인락커에 넣어둔 큰 짐을 꺼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야했다. 문제는 시부야역이 매우 복잡하고 사람도 엄청 많고 우리나라 처럼 노선을 쉽게 갈아탈 수 있는 역이 아니라는 것. 내가 짐을 넣어둔 코인락커는 시부야역 JR선 쪽이었는데 이를 꺼내 이노카시라선 쪽으로 가는게 쉽지 않았다. 시부야 스크램블이라고 불리는 그 사람 엄청 많은 거리를 지나야했다. 사실 당시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암튼 낑낑대면서 등에는 가득찬 백팩, 양손엔 캐리어를 끌고 어떻게든 가긴 했다. 주변에서 봤을 때 좀 가관이었을듯. 이노카시라선을 타고 이케노우에역으로 간 다음 그 뒤로 도보 10분 정도 걸어가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대략 40분 내외의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총합 50키로의 짐을 들고 이동하다보니까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결국 이렇게 집에는 도착했지만 그 다음에 계획된 것이 있었기에 마냥 쉴 수 없었다. 다음 행선지는 세타가야 구약소였다.
워홀 필수 절차 중 첫 번째인 주민등록을 하러 세타가야 구약소에 가야했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꽤 많이. 나중에 들어보니까 원래 도쿄에 그정도 눈이 내리는건 1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라고. 암튼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해 우산도 갑자기 사고 눈에 헤쳐가며 세타가야 구약소로 향했다. 구약소에 도착하고 입구에 계신 직원에게 주민등록하러 왔다고 하니 뭐뭐 작성하고 번호표 뽑으라고 하셨다. 그렇게 작성할 거 하고 번호표를 뽑고 대기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진 않아서 대기 순서는 금방 왔는데 창구에 계신 직원분이 연수중인 분이셔서 그런지 좀 서투르셨다. 매뉴얼 보시면서 다른 직원분에게 여쭤가면서 하시던데 하필 외국인인 나를 상대하시느라 참 고생이 많으셨다. 그렇게 등록 신청은 했고 완료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핸드폰 개통을 어떻게 해야할지 검색하면서 시간을 보내니까 생각보단 금방 나왔다. 그 후 사회보험료 감면, 국민연금 면제 등등 다시 와서 하기 귀찮은 것들까지 하느라 좀 더 걸리긴 했지만 한 3시간 내외만에 구약소를 나설 수 있었다.
그 다음 절차는 핸드폰 개통이었다. 여러 통신사와 요금제들이 있었지만 원래 생각해둔 것은 라쿠텐 모바일이었다. 우리나라의 알뜰 통신사 포지션 중 하나인데 한달에 20기가가 많은 정도인 다른 통신사와 다르게 데이터 무제한인데다가 엄청 싸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구약소에서 기다리면서 검색하다보니 건물이나 지하철, 사람 많은 곳 등에서 데이터가 사실상 안터진다는 후기가 너무 많았다. 물론 그에 개의치 않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데이터가 잘 터지는 것은 내게 있어서 실로 중요한 사항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알뜰 통신사의 20기가짜리 요금제는 데이터 양이 너무 적었다. 20기가면 내게 있어서 5일이면 쓰는 양이었다. 원래 세타가야 구약소 업무를 끝내고 근방의 산겐자야로 가서 그곳에 있는 라쿠텐 모바일 지점에 가서 개통을 하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허나 생각이 이렇게 바뀌니 계획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그냥 물어보러 라쿠텐 모바일에 가보긴 했지만 직원 한명에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 더 있기도 하여 한세월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핸드폰 개통은 다음 날에 하기로 결정했다. 많은 워홀러들이 빅카메라라는 전자제품 판매매장에 가서 여러 통신사 요금제를 보고 결정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나도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실 무엇보다 배가 고프기도 했다. 계속 이동에 이동만 했기에 중간에 뭘 먹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앞에 바로 보인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하나 먹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메뉴를 먹어보았는데 야채가 없긴 했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5시까진 집에 돌아가야했다. 가스 개시와 중고가전 설치가 5~7시 사이에 방문한다고 예정되어있었고 그 때 내가 집에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중고가전(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는 부동산을 통해 구매했는데 설치해주시는 분이 한국 분이셨다. 5시보다 먼저 도착해 계셨는데, 일본은 눈이 오면 도로망이 거의 마비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날도 거의 없다다고도 하셨다. 그리고 진짜 이 분이 센스가 있었다고 느끼신게 전등을 가져오신 부분이었다. 일본은 세입 들어갈 때 전등도 사가지고 들어가야한다. 사놓았다고 해도 천장이 높은 편이라 다는 것도 힘들어보였다. 근데 이 분이 "전등 하나 가져왔는데 사실래요? 설치도 해드릴게요"라고 내게 물었을 때 내가 구입해야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감사했다. 암튼 이 분이 가전제품도 전등도 잘 설치해주셨다. 그리고 곧이어 가스 여시는 분도 방문하셨다. 여러가지 체크하시더니 문제없다고 하시고 관련 내용이 들어있는 팜플렛을 주시고 돌아가셨다. 여기까진 다 순조로웠다.
6시~8시 사이에는 주문한 가구가 도착할 예정이었다. 매트릭스, 낮은 책상, 이불 등등. 생활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가구였다. 침대까진 바라지 않아도 매트릭스는 필요했다. 그래서 일본에 오기 전 나는 입주 당일 저녁에 도착하는 걸로
필수 가구를 주문해두었었다.
뭔가를 배송시키면 문 앞에 두고 가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받는 사람이 집에 있어야 물품을 수취할 수 있다. 그래서 8시까지 집에서 무작정 기다려야했다. 하지만 오지 않았다. 문득 눈이 많이 오는 날은 도로망이 마비된다는 가전제품 설치해주신 분의 말씀이 생각났지만 설마 아무리 그래도 오늘안에는 오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8시가 지나도 오지 않았다. 주문서를 뒤져가면서 내가 주문한 가구의 현황을 알 수 있었다. 6시에는 배송을 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8시에는 다시 창고로 들어가있었다. 결국 시간 내에 배송을 하지 못하여 돌아가버린 상태였던 것이다.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던 하루가 마지막에 망가지다니. 눈바람이 휘날리는 꽤 추운 날이기도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잘 곳을 만들어야했다. 가져온 요가매트에 전기장판을 깐 뒤, 옷들을 배게 삼고 코트를 이불 삼아 잠을 잤다. 누워있으면서도 '8시가 지났다고 해도 그 날안에는 배송을 해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지 몸은 엄청 피곤했기에 잠은 빨리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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